전체 글26 소크라테스의 생각으로 본 고종 (아관파천, 외세 사이의 균형, 왕이라는 자리) 인간은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쉽게 길을 잃는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만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 제26대 왕 고종을 바라보면, 그는 단순히 격변기의 군주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끝까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선택을 반복했던 인물로 읽힌다. 특히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은 그의 통치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며, 그 결정은 단순한 피신이 아니라 권력과 생존 사이에서 이루어진 복잡한 판단이었다. 이 글은 고종이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판단 속에 어떤 ‘무지와 질문의 부재’가 있었는지를 소크라테스의 시선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1.아관파천, 도망인가 선택인가 1896년 고종은 일본 세력의 위협 속에서 .. 2026. 4. 10. 플라톤이라면 철종을 어떤 시각으로 볼까? (삼정의 문란, 철인 정치의 부재, 이상과 현실) 국가가 올바르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성을 갖춘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군주의 자격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그는 『국가』에서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이상으로 제시하며, 지혜와 통찰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다. 조선 제25대 왕 철종은 강화도에서 평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다가 왕위에 오른 인물로, 그의 통치는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와 겹친다. 특히 그는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지 못했는데, 이 선택은 단순한 무능을 넘어 구조적 한계와 인식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글은 철종이 왜 적극적인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그 판단을 플라톤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1.삼정의 문란, 알지 못했던 .. 2026. 4. 10. 칸트의 논리와 비교해본 헌종 (기해박해, 자유의 부재, 도덕적 책임)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은 권력자의 선택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조선 제24대 왕 헌종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외척 중심의 정치 구조 속에서 통치했으며, 그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는 천주교 박해, 이른바 기해박해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종교 갈등이 아니라 권력과 도덕 판단이 충돌한 지점으로 볼 수 있다. 헌종은 왜 이 결정을 받아들였을까. 그의 선택은 과연 의무에 따른 것이었을까, 아니면 타율적 환경에 굴복한 결과였을까. 이 글은 헌종의 판단을 칸트의 ‘정언명령’ 개념을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1.기해박해, 의무의 판단이었는가 기해박해는 조선 사회에서 천주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었다... 2026. 4. 10. 니체의 관점으로 본 순조 (어린 왕, 세도 정치,감당하지 못한 무게) 권력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을 ‘의지의 존재’로 보며, 스스로의 힘을 긍정하고 확장하려는 의지가 삶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 의지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권력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특히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한 세도정치의 시작은 그의 통치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 선택의 배경에는 단순한 무능이 아닌 복잡한 심리와 상황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글은 순조가 왜 권력을 내어주는 선택을 했는지, 그 결정을 니체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1.어린 왕의 선택, 권력을 내려놓은 순.. 2026. 4. 10. 쇼펜하우어의 눈으로 본 군주 : 정조 (규장각, 개혁군주, 반복되는 역사) 인간의 삶은 욕망과 결핍, 그리고 그것이 낳는 고통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의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인간이 아무리 이성적으로 보일지라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를 바라보면, 그는 단순한 개혁군주가 아니라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모색했던 인간으로 드러난다. 특히 규장각 설치라는 결정은 그의 정치적 업적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에 대한 불안과 과거의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글은 정조의 선택을 이상적인 개혁이 아니라, 인간적 의지의 산물로 해석하고자 한다. 1.규장각 설치, 지식인가 권력인가 정조가 즉위 직후 추진한 규장각 설치.. 2026. 4. 10. 조선의 장수 군주 영조(왕위 계승의 여정, 탕평책, 임오화변) 조선 왕조의 역사를 통틀어 제21대 국왕 영조만큼 극적인 삶의 궤적을 그리며 긴 세월 동안 왕좌를 지킨 인물은 드뭅니다. 그는 단순히 52년이라는 최장기 재위 기록이나 82세라는 천수를 누린 장수 군주라는 수식어를 넘어, 신분적 한계와 정통성 시비라는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으려 분투했던 개혁가였습니다. 영조의 시대는 숙종 대부터 이어져 온 치열한 붕당 정치의 폐단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으며, 그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탕평'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실험을 단행하며 조선의 새로운 중흥기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업적의 이면에는 자신의 친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음에 이르게 한 '임오화변'이라는 지울 수 없는 비극이 공존하고 있어, 오늘날 우리에게 군주로서의 냉철함과 아버지로서의 고뇌에 .. 2026. 3. 31.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