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은 결국 성격과 습관, 그리고 상황 속에서 형성된 덕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는 마지막 군주 순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그는 인간이 완전한 자유 속에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이라 여겨지는 선택을 반복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조선의 마지막 군주 순종은 이미 국권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즉위했으며, 그의 시대는 한일병합이라는 결정적 사건으로 귀결된다. 이 글은 순종이 왜 그 상황 속에서 적극적인 저항 대신 수용의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단순한 무력함이 아니라 어떤 ‘실천적 판단’의 결과였는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1.한일병합, 저항하지 않은 선택의 이유
1910년 한일병합은 조선 왕조의 종말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이 결정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 압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순종이 보여준 태도는 단순한 강제의 결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끝까지 공개적인 무력 저항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왕조의 종결을 받아들이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왜 그는 마지막까지 저항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행위는 극단이 아니라 ‘중용’을 지향한다. 지나친 용기는 무모함이 되고, 지나친 신중함은 비겁함이 되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현실을 고려한 판단이 이루어진다. 나는 순종의 선택이 바로 이 지점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느낀다. 그는 무력 저항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이미 군사력과 외교력에서 큰 차이가 벌어진 상황에서, 무력 충돌은 더 큰 희생과 파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왕으로서 국가의 존엄을 지키는 것과, 백성들의 생존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후자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겉으로는 소극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남는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굴복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가장 덜 파괴적인 방향을 고민했을 가능성이 크다.
2.덕과 습관, 형성된 선택의 방식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덕이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습관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순종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 주체로 성장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이미 외세의 영향력이 강해진 상황에서 그는 왕세자로서도 제한된 역할만 수행했고, 즉위 이후에도 실질적인 권한은 크게 축소되어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그의 선택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를 점점 습관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된 경험이 만든 결과라고 느낀다.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게 되면, 점차 그 상황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순종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는 점점 자신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찾는 데 익숙해졌을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한일병합이라는 결정적 순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갑자기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기보다는, 그동안 형성된 판단 방식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개인의 도덕적 실패라기보다, 형성된 덕과 습관이 그대로 발현된 결과다.
3.현실과 이상, 넘지 못한 경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이상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순종의 상황은 바로 이 두 가지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있었다. 한편으로 그는 한 나라의 군주로서 국가의 독립과 존엄을 지켜야 하는 이상적 책임을 지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무너져가는 현실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그에게 매우 깊은 갈등을 안겼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는 이상을 선택하면 현실이 무너지고, 현실을 선택하면 이상이 사라지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결국 현실 쪽으로 기울었다. 이는 이상을 포기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현실을 직시한 판단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에서 보면 완전한 덕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균형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은 그 균형을 끝내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군주로서의 이상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택을 단순히 비겁함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는 인간이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얼마나 제한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의 삶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처럼 남는다.
<순종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단순히 마지막 왕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 속에서 끝까지 균형을 고민했던 인물로 보인다. 그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를 끊임없이 계산하며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 점에서 그의 삶이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누구나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면 이상적인 선택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순종 역시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조건 속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존재다. 순종은 그 최선이 무엇인지 끝까지 고민했을 것이고, 그 결과가 한일병합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을 뿐이다.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흐름에 맡겨진 존재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그는 끝까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반복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과연 그와 같은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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