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쉽게 길을 잃는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만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 제26대 왕 고종을 바라보면, 그는 단순히 격변기의 군주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끝까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선택을 반복했던 인물로 읽힌다. 특히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은 그의 통치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며, 그 결정은 단순한 피신이 아니라 권력과 생존 사이에서 이루어진 복잡한 판단이었다. 이 글은 고종이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판단 속에 어떤 ‘무지와 질문의 부재’가 있었는지를 소크라테스의 시선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1.아관파천, 도망인가 선택인가
1896년 고종은 일본 세력의 위협 속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결정을 내린다. 이른바 아관파천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한 피신처럼 보인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 궁궐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고, 일본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종이 외국 공사관으로 이동한 것은 일정 부분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결정은 단순한 생존 전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는 조선의 왕이었고, 국가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궁궐을 떠났다는 것은 권력의 중심을 외부로 옮긴 행위이기도 했다. 나는 이 지점에서 그가 단순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선택이 충분한 이해와 질문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소크라테스라면 “지금 이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고종은 그 질문을 충분히 깊게 던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일본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를 선택했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의존 관계를 만든다는 점까지는 완전히 고려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관파천은 단순한 피신이 아니라, 이해가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방향 전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외세 사이의 균형, 질문 없는 선택의 반복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외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강대국과의 협력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의 외교는 점점 복잡한 균형 속에 들어가게 된다. 겉으로 보면 이는 현실적인 외교 전략처럼 보인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당시 상황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선택의 방식이다. 그는 단순히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근거를 끝까지 따져 묻는 태도를 강조했다. 고종의 경우, 이러한 질문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선택했고, 다시 다른 세력과의 관계를 고려했지만, 그 모든 선택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가 끊임없이 상황에 대응하며 선택을 반복했지만, 그 선택을 관통하는 일관된 기준을 끝내 확립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이는 단순한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항상 다음 선택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외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그 균형은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로 남았다.
3.왕이라는 자리, 끝내 도달하지 못한 자기 인식
고종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 선택을 지탱하는 자기 인식은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보았다. 고종은 왕이라는 자리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렸지만, 그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관파천 역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흔드는 결정이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왕권의 상징성은 약화되었다. 나는 이 점에서 그의 선택이 단순히 외부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느낀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그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선택을 반복했고, 그 선택들은 서로를 보완하기보다 오히려 모순을 만들어냈다. 소크라테스의 기준에서 보면 이는 ‘자신을 알지 못한 상태’에 머무른 결과다. 고종은 시대의 격변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끝내 확립하지 못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실패라기보다, 질문하지 못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진다.
;고종의 삶은 끊임없이 선택했지만, 그 선택의 기준을 끝내 명확히 세우지 못한 인간의 기록이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하나의 단순하지만 깊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 서 있지만, 그 선택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외부의 정보나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아무리 급박해도, 한 번 더 묻고 생각하는 과정이 없다면 선택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고종은 많은 것을 고민했을지 모르지만, 그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질문의 힘은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의 삶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면, 그 선택은 결국 타인의 흐름에 떠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종 #조선왕조 #아관파천 #대한제국 #조선후기 #한국사 #소크라테스 #역사해석 #외교정치 #인문학글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마지막 황제 순종 (한일병합, 덕과 습관, 넘지 못한 경계) (0) | 2026.04.10 |
|---|---|
| 플라톤이라면 철종을 어떤 시각으로 볼까? (삼정의 문란, 철인 정치의 부재, 이상과 현실) (0) | 2026.04.10 |
| 칸트의 논리와 비교해본 헌종 (기해박해, 자유의 부재, 도덕적 책임) (0) | 2026.04.10 |
| 니체의 관점으로 본 순조 (어린 왕, 세도 정치,감당하지 못한 무게) (0) | 2026.04.10 |
| 쇼펜하우어의 눈으로 본 군주 : 정조 (규장각, 개혁군주, 반복되는 역사) (0) | 2026.04.10 |